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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기독교

로마서 서론

by 라라필링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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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매우 친근한 어투로 편지를 시작한다. 인칭대명사와 소유 대명사(나, 나를, 나의)가 이 첫 구절들에서 스무 번 이상 나온다. 그는 처음부터 독자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간절히 원한다. 서론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바울과 복음'(1-6절), '바울과 로마인들'(7-13절) 그리고 '바울과 복음 전도'(14-17절)라고 부를 수 있다.

 

바울과 복음 (1:1-6)

편지를 쓰는 관습은 각 문화마다 다르다. 현대인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먼저 쓰고('친애하는 조앤에게'), 제일 끝에 가서야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힌다.('존 드림').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그 순서가 반대였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먼저 알리고, 그 다음에 받는 사람 이름이 나왔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보통 당시의 관습을 따랐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관습 이상으로 복음과 관련해서 자신을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상세히 묘사한다. 아마도 로마에 있는 교회는 그가 세운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다.
로마서 내용에 따르면 바울은 여러 번 로마 방문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는 사실을 말했으며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의 방문을 준비시키고자 이 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도로서 신임을 얻고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을 요약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문을 연다.

 

'종'은 '둘로스'인데 사실 '노예'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구약에는 모세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서, 스스로를 여호와의 '종' 혹은 '노예'라고 불렀던 존경할 만한 이스라엘인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한편 여호와도 이스라엘을 집단적으로 '나의 종'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주님'이라는 칭호가 여호와를 나타내는 것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매우 쉽게 바뀌어 버렸으며, 이제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주님의 모든 백성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 '사도'란 말은 처음부터 독특하게 기독교에서만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직접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라 칭하셨으며, 바울이 스스로 그 열둘에 더하여졌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도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격 조건은, 예수님이 그들을 친히 부르시고 위임하셨다는 것, 그들이 역사적 예수, 적어도 그 분의 부활을 목격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의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그 분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에 나오는 사도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도록 그 분에 의해 '부르심 받고', '보내심 받았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자기 상관을 대리해서 행동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지닌 공인된 대표 혹은 대리인'이었던 랍비적 유대교의 '샬리아'와도 공통점이 있었다. 권위있게 가르치는 사도의 역할은 이러한 이중적 배경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이 스스로를 '종'과 '사도'라는 두 가지 칭호로 부른 것은 이 단어들을 서로 대비 시켜 볼 때 특별히 인상적이다. 첫째로, '종'이란 매우 겸손한 칭호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구속받아 그 분에게 속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권리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사도'란 대단한 권위를 나타내는 칭호였다. 그 표현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특권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햇음을 나타냈다. 둘째로 '종'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단어인 반면 '사도'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칭호이다. 그는 사도로서 '하나님이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

 

바울은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을 어떠한 의미로 사용했는가? '아포리스메노스'라는 동사는 '바리새인'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것이다. 바울이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에 의도저으로 이 말을 쓴 것일까? 예를 들어, 앤더스 니그렌은 자신의 루터주의적 배경을 은연중에 나타내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위해 스스로를 택정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그를 택정하셨다. 따라서 이 서신서의 첫 구절에서 우리는, 이 서신서가 기본적으로 율법과 복음을 나란히 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둘을 나란히 놓는 것이 바로 로마서의 주제이다.' 그러나 바울의 독자들이 이러한 언어상의 유희를 깨달았는지는 의심스럽다. 바울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사도로 봉헌된 것과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봉헌된 것을 대비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하나님이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정하셨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도록 부르셨다고 썼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을 단지 그의 회심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가 사도가 되도록 그리고 특별히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도록 위임받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두 개의 동사 표현, 즉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불가 분리하게 결합되어 있다. '복음'을 생각하지 않고는 '사도'를 생각할 수 없으며, '사도'를 생각하지 않고는 '복음'을 생각 할 수 없다. 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을 받고 명확하게 말하고 변호하고 보존하고 선포할 책임이 있었다. 그럼으로써 수탁자와 옹호자와 사자의 역할을 모두 해야 했던 것이다. 크랜필드 교수가 말했듯이, 사도의 기능은 '권위 있게, 또 규범적으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복음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그것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복음음 여섯 가지로 분석한다. 

 


로마서의 배경

이 서신이 쓰일 당시에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의 끝 무렵에 들어선 때였다.

안디옥 - 다소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안디옥 - 에베소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고린도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예루살렘의 성도들 중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금 사역 중이었다. 그는 전도 여행 중 많은 사람들로부터 로마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로마서 16장에 언급되어 있는 수많은 성도들의 이름은 직접 로마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의 교회에 대하여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방문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자 비서 격인 더디오를 통해 로마서를 작성하여 보내게 된 것이다.


로마서의 기록목적

  1.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도록 (롬 1:11-15)
  2. 스페인 선교의 재정적 후원 모금 (롬 15:24-28)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

무엇보다 로마서는 그가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에 앞서 그 곳의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도록 (롬 1:11-15) 돕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또한 방문 후에 계획하고 있었던 스페인 선교의 재정적 후원(롬 15:24-28)을 받으려는 생각도 있었다. 유대 기독교인들을 돕기 위해 모금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방인이 다수였던 로마 교회의 기독교인들에게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사도 바울은 인종까지도 초월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로마서의 특징을 논하기 전에 먼저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과연 누가 로마 교회를 세웠는가?"라는 질문이다.


과연 누가 로마 교회를 세웠는가?

로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세우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카톨릭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가 로마 교회를 세운 것도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료 하나가 남아있다.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의 선동으로 로마에서 폭동이 일어나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을 로마 밖으로 다 축출했다. 
로마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 (AD 49-50) 

 

이러한 비기독교인 역사가의 기록은 폭동의 주동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오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로마 교회는 사도들이나 로마인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기 보다는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이방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후 로마로 돌아와 세운 것이라 결론 내리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로마서의 주제 

로마서 1장 12절에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는  표현에 나타나듯 로마서는 복음의 성격에 대한 거대한 논문과 같은 책이라 말할 수 있다. 로마서를 논문이라고 본다면 논문의 주제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 일 것이다. 

 

핵심 구절은 1장 17절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며 이는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를 변화시킨 구절이기도 하다.

 

이 구절에 나타난 의로움, 믿음, 삶이라는 세 개의 핵심 주제는 로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마서의 중심사상

인간의 죄성에 대해 로마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라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그것이 인간의 현재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행위나 유대교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되는 길이다.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을 위한 속죄물로 보내 주신 것, 그것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의 핵심이다. 믿음을 통해 어느 누구나 의롭다고 칭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이신칭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서신이 단순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12장부터는 믿음이 어떻게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가를 강조한다. 한 마디로 의를 입은 자로서 걸맞은 행함을 매일의 삶 속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분리된 교리란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인 동사형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서 앞 부분에서 의인이 '믿음으로만 산다'고 한 말을 믿음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오해한 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하다.

 

로마서의 뒷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고 하면서 우리의 삶이 예배임이 강조되어 있음을 묵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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