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적 진리의 상실과 새로운 신의 이미지
사람들은 자연히 모든 것을 의식으로 재단하면서 자아-중심적으로 사는데, 자아-의식은 결코 정신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일 뿐, 정신 전체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자아가 지금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판단하는 내용들로만 구성되지 않고, 그것들을 무한하게 뛰어넘는 내용들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자아-의식만 가지고 파악하면서 살 때, 그 삶은 지극히 협소하고, 무의미하며, 무료해질 수밖에 없다. 지극히 작은 숟가락으로 바닷물을 퍼 담으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무의 미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분석심리학자 버타인은 이런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한쪽 측면에서만 가치가 있는 진리들이 등장하거나, 세속적 가치가 중심적 가치를 대체하려고 하거나, 단순히 고통만 피하려는 태도들이 생겨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지금 한쪽 면에서만 가치가 있는 여러 가지 주의, 주장을 숭배하거나, 세속적 가치인 돈, 성공, 권력 등을 신처럼 숭배하며, 많은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길만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융은 현대인의 이런 대응은 임시방편적인 것일 뿐 결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방법들 역시 지극히 자아-의식 중심적인 것으로서 인간 정신의 전체성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여태까지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신이 더 이상 중심적 진리가 되지 못한다면, 새로운 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그동안 신이라고 생각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의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융의 이런 생각은 중세의 신비가 에크하르트의 사상과 비슷한데, 그 역시 신성과 신을 구분하면서, 신성은 신의 본질을 의미하고, 신은 사람들이 신이라고 믿는 이미지를 말한다고 하였다.
사실 한 사람이 신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는 그가 신성과 만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가진 신의 이미지를 매개로 해서 형이상학적 신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가 그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신을 만나게 해주지 못한다면 현대인은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과거에 만들어진 신의 이미지는 시대가 달라지면서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그동안 사람들이 과거의 신에게 투사시켰던 에너지가 더 이상 투사 대상을 찾지 못하여 의식에서 흘러넘치면서 수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그 사실을 그 자신은 물론 그를 찾아오는 수많은 환자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잘 설명해주었던 원형적인 내용들이 오늘날에는 그 투사 대상에서 풀려나왔고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다. 그 내용에 연계되어 있던 정신 에너지가 요동을 쳐서 우리는 무관심한 채로 있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새로운 신의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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