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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프로이트의 성 충동과 사회

by 라라필링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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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성적인 목표에서 다른 방향으로 돌려져서 더 이상 성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회적으로 더욱 고상한 측면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성 충동은 그저 약하게 통제될 뿐이어서, 문화적인 활동에 참가하려고 하는 모든 개개인들에게는 본능 충동을 이렇게 사용하기를 거부하려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사회는 성적 충동이 해방되어 원래의 목표로 회귀하려는 경향성이 강화될 때 빚어지는 위험을 자신의 문화에 대한 가장 무서운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그 근거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가장 예민한 부분이 건드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회는 또 이러한 성 충동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인정하고나 성생활이 개개인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조금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교육적인 목적에서 이 부분에 대한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려 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정신분석학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심미적 관점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도덕적 관점에서는 비난 받아 마땅한 것으로, 더 나아가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어 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반론은 학문적 작업의 객관적인 결과를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론이 더 확대되려면 지적인 용어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어떤 것에 반감을 가질 때는 그것을 옳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버리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또 그것에 반대하는 논거는 곧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옳지 않은 것으로 공표하고, 정신분석의 진실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논점으로 반박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은 정서적인 근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그것을 논박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편견에 불과한 이러한 이의를 고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편견에 대항하는 이러한 명제들을 주장함에 있어서 어떠한 경향성도 좇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수고스러운 작업을 거쳐서 확인했다고 믿고 있는 사실을 이 세상에 공표하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도록 요구하는 그와 같은 경계심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직접 조사해 볼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학문적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배려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려고 한다. 이것들이 아마도 여러분이 정신분석을 연구할 때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시작으로서는 너무 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적인 연구 - 실수행위 (Fehlleistung)

 

이제는 전제들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연구를 해봄으로써 시작하겠다. 우리 연구의 대상으로, 매우 흔히 일어나며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간과되어 왔고, 건강한 모든 사람에게도 관찰 될 수 있기 때문에 질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러한 현상을 택하기로 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이른바 실수행위라고 일컬어지는 것들로서,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그 대신에 다른 말이 튀어나오는 잘못 말하기 같은 것이라든가, 그가 그것을 눈치챘든 그러지 못했든 간에 그러한 똑같은 일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 혹은 어떤 사람이 인쇄물로 된 것이나 문서에 씌어 있는 것을 읽을 때 거기에 쓰인 것과는 다르게 읽으면서 일어나는 잘못 읽기 같은 것, 또는 그의 청각 기관에 어떤 기능적인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틀리게 들을 때, 즉 잘못 듣기 같은 행위들을 말한다. 그러한 현상들의 또 다른 종류에는 망각이 그 근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그가 확실히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던 이름이 생각이 안나거나, 나중에 생각이 날 때, 어떤 계획이 실행했다가 잊었을 때, 즉 일정시간 동안만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음 현상은 [일시적으로만] 이라는 조건이 빠진 경우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놓아두었다가 찾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와 유사한 경우인 잃어버리기가 여기에 속하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행위의 근저에는 망각이 가로놓여 있는데, 이 경우 사람들은 다른 망각의 경우에서처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놀라거나 분개하는 등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 밖에도 [일시성]이라는 요인이 전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다른 착각들이 있다. 그 경우에 사람들은 어떤 것을 잠시 동안 사실로 믿어 버리는 행동을 한다. 이 밖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비슷한 경우가 수없이 많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Ver-> 라는 전철이 앞에 놓이면서 그들 사이의 내적인 유사성이 표현되는 경우들이다. 그것들은 거의 모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대부분은 피상적인 성격을 띠며 생활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어쩌다 매우 드문 경우,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다든지 하는 몇 가지 경우에만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다지 큰 관심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미약한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주의를 끌고자 한다.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많은데 왜 이런 사소한 현상에 신경쓰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비판이 요점을 빗나갔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은 이와 같이 사소한 문제들에 집착해 본 적이 없노라고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정신분석의 관찰 재료는 일반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들, 다른 학문들에서 너무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어 무시되는 것들, 이른바 현상 세계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을 하면서 문제의 크기와 징후의 현저함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는 아주 미약한 징조만으로도 드러나게 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아주 작은 징조라고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에서 더 큰 단서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정신분석이 뭔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을 붙들고 그러한 실수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물어보고자 한다. 만약 자신이 이 사안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즉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능상의 일탈적 현상들이나 심리적 능력상의 부정확성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평소에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다음과 같은 경우 실수 할 수 있다.

 

1. 기분이 언짢거나 피로한 경우

2.흥분 상태에 놓여 있는 겅우

3. 주의력이 다른 일에 쏠려 있는 겅우 등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몹시 피곤하거나 두통에 시달릴 때 말이 자주 헛나온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름을 쉽게 잊어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사람들이 흥분할 때 사물들에 대한 분별력도 없어진다. 엉뚱한 물건을 집거나 자신이 무슨일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다. 또 주의가 산만해져 있을 때, 의도하지 않은 다른 행동을 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으로 지적되는 조건들은 그 종류에 있어서 다 같은 것들이 아니다.

불쾌감이나 순환기 계통 장애들은 정상적인 기능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생리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반면 흥분, 피로, 방심은 또 다른 종류의 계기들이다. 정신 생리적인 것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경우에 문제되는 것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주의력 장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연구해 들어가게 되면 실수 행위가 모두 주의력 이론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의력 장애 말고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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